자유계약선수는 자유인가

자유계약선수는 자유인가

자유계약선수는 자유인가

Blog Article

자유계약(FA)선수는 자유인가


2002 한·일 월드컵 대한민국 대표 선수였던 이천수의 실제 가치는 그 당시 '5,500만 달러(약 660억 원)' 라고 한다. 이는 이천수 선수가 스페인 프로리그 레알 소시에다드팀에 입단하면서 구단이 향후 이천수 선수에게 기대하는 가치가 이적료 350만 달러(약 42억 원)의 약 16배인 5,500만 달러라는 것이다. 이는 이천수가 만약 계약 기간 3년에 구단 옵션 1년을 합한 총 4년의 기간 내에 구단의 동의 없이 타 팀으로 이적할 경우 레알 소시에다드 구단에 배상해야 할 위약금이 5,500만 달러 정도라고 구단이 밝힌 것을 근거로 한다. 위약금이라 비교적 높게 책정되기는 하였지만, 이는 곧 선수가 구단의 동의 없이는 타 팀으로 쉽게 이적할 수 없도록 만든 장치로서 실제로는 이적료를 뜻한다. 한편 세계적인 축구 스타 베컴과 라울(이상 레알 마드리드)의 위약금은 2억 달러(약 2,400억 원)에 이른다고 알려졌다.

또 다른 경우를 보자. 감각적인 볼터치와 기술로 앙팡테리블이란 별명을 들으며 천재성을 보여주던 전 수원 삼성 소속 고종수 선수, 그의 J-리그 이적문제로 인해 자유계약(FA) 선수의 이적료 문제가 2003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FA 신분으로 풀린 선수가 해외 이적을 시도한 것은 고종수가 첫 번째 케이스 프로축구연맹의 FA 조항에 따르면 FA 자격 취득선수가 타구단으로 이적할 경우 양 구단 합의에 의해 영입 구단은 원 소속 구단에 이적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규정대로라면 국내외 팀을 막론하고 FA 선수가 팀을 이적할 때는 당초 소속 구단에 이적료를 지불해야만 한다. 고종수 선수가 J-리그로 이적할 때도 이적료 문제가 이슈가 되었고 박지성 선수의 아인트호벤 진출 때처럼 이적료 없이 진행돼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던 것이 사실이다. 만약 고종수 선수가 이적료 없이 J리그에 진출하였을 경우 FA 제도의 개선이 이루어질 필요성이 있었다. 왜냐하면 해외이적에는 이적료가 없고 국내 다른 팀으로의 이적시에만 이적료가 필요할 경우 자유계약 대상 선수들의 해외진출이 줄을 이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무렵 고종수 선수는 유럽을 포함한 해외 여러 나라 프로리그로의 이적을 타진하였지만 결국 J-리그 교토 퍼플상가팀으로 1년 간 임대계약 형식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적료 문제를 피하면서 한시적으로 다른 팀으로 이적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 보여진다.

이적료 문제는 저 유명한 '보스만 판결'로 인하여 이미 유럽 전역의 선수 스포츠 시장을 뜨겁게 달군 바 있다. 그러면 유럽뿐만 아니라 FIFA까지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보스만 판결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자. 보스만 판결은 1995년 유럽사법재판소가, 프로축구 선수의 이적 때 구단 간에 지불하는 이적료가 선수들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내린 판결이다. 1990년 벨기에의 축구선수 보스만(Jean-Marc Bosman)이 벨기에의 RFC리에주 클럽팀에서 프랑스의 덩케르크 팀으로 이적하려다가 소속 구단의 동의 없이는 이적할 수 없다는 규정에 묶여 팀을 옮기지 못하자, 이 규정이 선수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이라며 유럽사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1995년 12월 15일 유럽사법재판소는 이 규정이 유럽연합 소속 근로자들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한 로마조약에 위배된다고 선언하였다.

이 판결로 계약만료 선수의 자유계약과 유럽연합(EU) 내외국인 선수 보유제한 철폐가 이루어져 세계 축구계의 이적 질서에 커다란 변혁이 일어났다. 이 판결이 내려지자 처음에는 선수 연봉의 폭등과 구단의 이적료 수입 감소 등을 야기해 재정이 취약한 구단과 유럽 프로축구 자체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는 이유로 유럽 각국프로축구 구단과 유럽축구연맹(UEFA)의 커다란 반발을 샀다. 한편 새로운 이적제도에 따라 선수를 스카우트한 구단은 이적료 대신 선수의 연령별로 다양한 보상을 제공해야 하는데, 23세 이하의 선수가 이적할 경우 선수를 영입하는 구단은 전 소속 구단에 훈련비용을 지급해야 하며, 18세 이하 선수가 다른 나라로 이적할 때는 훈련과 학업비용을 지급한다는 양국 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럼 보스만 판결의 의미는 무엇일까?

보스만 판결은 전 유럽 축구계에 엄청난 파장과 변화를 몰고왔다. 구단들은 선수와 계약할 때 이전보다 훨씬 더 장기적인 계약을 추진하게 되었다. 만약 그렇지 경우 자유로운 이적으로 인해 선수를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정 상태가 여의치 않은 규모가 작은 구단은 젊고 어린 선수와 장기 계약을 할 수 없으므로 그러한 선수들이 자신의 잠재적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리하여 넉넉하지 못한 구단에 소속된 우수 선수들은 자유로운 이적으로 유명 구단으로 옮겨갈 수 있게 되었다.

영세 구단들이 이때까지 젊은 선수를 육성하여 유명 구단에 되팔아 벌어들이던 이적료 수입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유는 선수를 영입하고자 하는 구단은 계약이 만료된 선수를 사들이는 편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보스만 판결로 인해 영세 구단들은 결국 재정적으로 파산하든지 아니면 아마추어 팀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 다음으로 보스만 판결은 선수들의 권익을 신장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계약 만료된 선수는 그 숫자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선수 입장에서는 보다 높은 연봉을 요구할 수 있고, 최고의 연봉조건을 제시하는 팀으로 옮겨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보스만 판결은 선수들의 협상력을 상당히 높여 놓았다. 다른 산업분야에서 최고의 기술을 가진 근로자가 자신의 경력과 실력에 걸맞은 연봉을 요구하듯이 선수도 그와 같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유럽 경쟁 고용법' 적용과 관련해서 축구를 예외로 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비록 암스테르담 조약에서 스포츠의 특성을 별도로 선언하기는 하였지만 축구 역시 유럽연합(EU)의 다른 경쟁분야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활동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다른 산업분야와 마찬가지로 축구 산업 역시 유럽연합의 법을 따라야 한다.

보스만 판결은 유럽연합법이 축구에 영향을 미친 첫 케이스였으며 이는 다른 판결에도 영향을 미쳤다.

보스만 판결에 의하여 제기된 자유계약선수의 이적 자유는 유럽연합 이외의 나라(non-EU states), 즉 동유럽, 북아프리카 등과 같이 유럽연합국과 함께 협정을 맺은 나라에도 확산하게 되었다. 스페인 리그에서 활약하는 러시아 출신 발레리 카르핀 선수와 벨기에에서 활약한 바 있는 헝가리 출신 티보르 발락 선수와 관련된 최근 판결을 보면 EU 소속국가가 아니더라도 EU와 협정을 맺은 나라의 국민은 유럽연합 내에서는 그들이 원하는 나라로 자유로이 이적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은 것으로 보았다. 2000년 유럽위원회는 축구협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고 발표하였다. 현행 이적 제도는 암스테르담 조약 하에 있는 EU 소속 국가들 간 이적의 자유권을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이 소송은 심지어 현재 계약 중에 있는 선수들까지도 포함하여 거론하였다. 구단과 선수 중 누구든지 일방적으로 고용계약을 파기하려 한다면 다른 산업부문에서와 같이 일정기간 사전에 고지를 해 주어야 하고 또 고용계약 파기에 대한 대가로는 이전처럼 거액의 이적료가 아니라 단지 적은 금액의 보상만 해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1996년 2월 유럽축구연맹이 결국 이 판결을 준수하기로 함으로써 일단락 되었다. 2001년 3월 유럽연합 마리오 몬티 반독점위원회 위원과 국제축구연맹(FIFA)의 제프 블라터 회장, 유럽축구연맹(UEFA)의 레나르트 요한손 회장은 유럽연합 내 프로축구 선수들의 이적료를 폐지하고 계약기간은 최소 1년에서 최장 5년으로 제한하는 데 합의했다. 이로써 1995년 유럽사법재판소가 내린 보스만 판결 이후 6년 만에 이적료 제도가 사라지게 되었다.

새로운 이적 규정은 2001년 9월 1일 이후 계약하는 모든 선수와 국제적 이적에 적용되었다. 그리고 선수와 양수 · 양도 구단 모두가 이적료에 대하여 합의하지 않으면 이적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그러나 제도란 시대적 요구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 상황의 특수성까지도 고려되어야 좋은 제도이듯 보스만 판결은 그 정신과 취지가 훌륭하긴 하나 국내 프로리그의 선수 계약 관행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보스만 판결은 유럽연합 소속 국가 간의 자유로운 고용을 유도하기 위한 기본 정신에서 출발하였다는 점에서 우리의 여건에 맞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FIFA가 정한 국제 스포츠의 룰을 따르되 한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권 경제 블록이 창설되기 전까지는 지역적 특수성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국내 프로리그의 경우 아직 진정한 프로라 하기에는 각 구단의 선수자원이 풍부하지 못한 상황이고, 따라서 해외 구단의 거대 자본이 국내 우수 선수 영입을 겨냥할 때 이적료 요구 이외에는 현실적인 안전장치가 미약하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적료를 둘러싼 논쟁에 새로운 페이지를 장식한 보스만 판결은 축구계뿐만 아니라 모든 프로스포츠 종목의 선수 계약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보스만 판결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에도 불합리한 제도의 개선과 함께 역사가 진보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웅변으로 가르쳐주고 있다 하겠다.

Report this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