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슈퍼스타 펠레

축구의 슈퍼스타 펠레

축구의 슈퍼스타 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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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오면 무조건 골이 들어간다


에드송 아란테스 두 나시멘투Edson Arantes do Nascimento는 어린 시절 너무 가난해 걸레를 양말에 채워 넣어 공 대신 차며 축구를 한 기억이 있다. 어쩌다 자몽 열매라도 발견하면 그걸 차기도 했다. 이런 궁핍 때문에 열두 살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축구공을 차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가난은 결코 훗날 펠레 Pelé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해진 이 천재의 발을 묶어 놓을 수는 없었다. 최고가 될 때까지 연습을 멈추지 않던 펠레는 프로경기 1,363경기에 출전해 1,281골을 넣은 천부적인 골잡이가 됐다. 이는 1977년 21년간 계속해 온 축구선수로서의 경력을 마칠 때까지 경기당 0.94골을 기록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펠레가 나오면 무조건 골이 들어간다는 공식이 성립하기도 했다. 또 펠레는 1958년, 1962년, 1970년 월드컵에서 브라질팀을 우승으로 이끌어 세 번이나 월드컵 우승을 한 유일한 선수라는 경이로운 기록까지 수립했다.

브라질 빈민가의 다른 어린아이들처럼 펠레에게도 축구 외에는 미래를 위해 다른 걸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펠레는 그의 전기 「펠레의 신세계 Pelé's New World』를 지은 피터 보도Peter Bodo와 데이비드 허시 David Hirshey에게 "어렸을 때는 축구선수가 아닌 항공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난한 어린이가 비행연습을 하려고 비행기를 타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거리에서 친구들과 공을 차기는 쉬웠다. 그래서 결국 나는 비행기를 잊기로 마음먹은 것이다."브라질의 작은 마을 바우루에서 자란 펠레는 학교가 끝난 뒤 밤에는 구두닦이를 하면서도 틈만 나면 축구에 몰두했다.

 

골문을 제압한 천부적 골잡이


펠레의 첫 번째 코치는 바로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어린 펠레에게 패스, 헤딩 그리고 두 발을 모두 동원해 슈팅을 하는 방법 등을 가르쳤다. 이때 배운 기술로 펠레는 훗날 머리면 머리, 발이면 발 어느 것으로도 바로 골로 연결시키는 기술을 선보였다.

펠레는 로버트 피시 Robert L. Fish가 쓴 전기 「나의 삶과 멋진 게임 My Life and the Beautiful Game」에서 "누구든 제대로 된 선수가 되려면 적어도 두 발을 다 동원해서 골을 넣어야 한다"며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1940년생인 펠레는 단지 체력만 좋은 선수는 아니었다. 그에게는 골문을 장악하고 수비수를 제치며 골을 넣겠다는 강한 결심이 있었다.

펠레의 축구 스타일은 마치 포커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한마디로 골문을 제압한 선수라는 말이 어울리게, 펠레에게는 골을 넣는 데 쓸데없는 몸동작은 필요 없었다. 마치 미리 각본을 만들어 두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해내는 것만 같았다.

미국 프로축구팀 캔자스 위저드의 감독이자 전 국가대표팀 선수로 활약한 론 뉴먼 Ron Newman은 펠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펠레가 공을 찰 때는 패스를 할지, 골을 넣을지, 코너킥을 날릴지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펠레가 달리는데 느닷없이 골이 들어가니 당할 재간이 없었다." 뉴먼은 펠레가 1975~1977년 뉴욕 코스모스에서 활약할 당시 댈러스 토네이도 감독을 맡은 바 있어 펠레의 플레이를 자세히 볼 기회가 많았던 인물이다. "펠레가 공을 날릴 때는 다른 선수처럼 어깨를 움직이는 등 일체의 다른 몸동작이 없이 갑자기 볼이 날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식이다 보니 다른 선수가 펠레의 플레이를 알아챌 도리가 없다. 나도 우리 팀 선수들에게 펠레를 본받으라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

그러나 펠레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축구선수로서는 아담한 축에 속하는 5피트 8인치(약 173센티미터)라는 작은 체구가 걸림돌이었던 것이다. 단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펠레는 강도 높은 훈련을 해나갔다. 꾸준한 연습을 통해 펠레는 키 큰 선수들과 대적해도 유리하도록 점프력을 키워나갔다.

어린 시절 펠레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준 선수라면 열세 살인 펠레를 주니어 대표팀에 발탁한 브라질 대표선수 발데마르 데 브리투 Valdemar de Brito를 들 수 있다. 브리투는 1934년 브라질 월드컵에 우승할 당시 대표선수였고, 브리투가 개발한 훈련 프로그램은 어린 펠레에게 기본적인 몸동작을 익혀 주었다. 이는 나중에 펠레가 시합에서 선보이는 기술의 밑거름이 된다.

펠레는 "헤딩 연습을 하려고 공중에 공세 개를 매달아 놓고 동시에 이마로 받아 넘기는 연습을 했다"고 피시에게 훈련모습을 묘사했다.

주니어팀에서도 펠레는 키가 가장 작았고 결국 피나는 점프연습으로 키 큰 선수들과의 차이를 극복해야 했다. 지금도 펠레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나는 키 대신 훈련으로 다른 선수들과 대적할 수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펠레는 축구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1975년 코스모스에서 뛸 당시 펠레는 전반전에 슛을 세 번이나 날렸지만 모두 빗나가고 말았다. 원인을 분석하던 그는 미국에서 쓰이는 공이 브라질제보다 가볍고 부드러워 슛이 실패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펠레는 경기 후 기자들에게 “브라질에서 차는 것처럼 힘껏 찼더니 공이 모서리로 날아가거나 크로스바를 넘어가 버렸다"고 고백했다.

 

경기의 흐름을 읽어 내는 본능


브리투의 훈련 프로그램이 어린 펠레에게 남겨 준 가장 큰 교훈은 경기의 흐름을 읽고 본능적인 능력을 깨우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훈련방법 가운데는 이런 것도 있다. 선수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고 그 속에 선수 한 명이 들어간다. 원 안의 선수에게 공을 던지면 그 선수는 헤딩이나 킥으로 재빨리 다른 선수에게 공을 보내고, 그 공을 받은 선수가 원 안으로 들어와서 다시 같은 방식으로 공을 쳐내는 것이다. 펠레는 “이런 훈련은 반사신경을 발달시켜 주고 빠른 시간 내에 공을 받아 바로 패스로 연결하는 능력을 키워 준다"고 말했다.

펠레는 언제나 운동에 대해서는 강한 열정을 품고 있었다. 은퇴 직전 코스모스에서 활약할 당시에도 펠레는 무승부가 되면 승부차기로 승패를 결정짓는 미국 프로축구 규칙에 대해 자주 불평을 늘어놓았다. 다섯 명의 선수가 뽑혀서 골키퍼와 1대 1 대결을 펼치는 이 규칙을 펠레가 불만스러워한 데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사실 펠레는 미국 프로축구에서는 최고의 골잡이고 골키퍼와의 대결에서 밀릴 리 만무했다. 다음은 당시 코스모스에서 같이 활약한 릭 데이비스Rick Davis의 말이다. "펠레처럼 게임에 대한 열정이 강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런 펠레가 보기에 골키퍼에게 슛을 날리는 것만으로 게임을 마무리하는 싱거운 방식은 좋은 게임을 망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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